우리에게 뉴노멀 시대는 이전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가혹한 세상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대공황을 떠올리는 심각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곡물과 원유의 가격이 치솟으면서 시장이 붕괴되어가고 있습니다. 불과 2~3년 정도의 기간 동안 겪은 상황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뉴노멀 시대의 세상에서는 모든 분야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양분화 되어 있습니다.
치솟는 집값에 새 아파트 대신 노후주택이나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를 구매하여 리모델링 하거나 아예 자연녹지 등을 매입해서 주택 신축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적정한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뉴노멀의 현재 사회에서는 인건비, 마감재 등 건축이나 리모델링 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셀프로 디자인을 구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며, 양분화된 사회 속에서 이 셀프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용역으로 이윤을 창출하던 디자인 기업들의 매출 감소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디자인 시장도 대형 디자인 기업은 생존하고, 몇몇 디자이너의 역량에 의존하던 소형 디자인 기업들의 폐업은 지속될 것입니다.
세계 10위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은 왜 디자인 기업들의 무덤이 되었을까요? 한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 모든 공간에는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고, 그 디자인 시장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디자인은 성장 가능성이 낮은 산업분야입니다. 한국기업 중 디자이너 활용기업은 18.8%¹에 불과합니다. 이에 반해 영국은 33%, 스웨덴의 경우도 75%²이며,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에도 디자인 활용도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고 디자인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프리츠커상의 경우는 또 어떨까요? 1979년에 시작해 매해 수상자를 배출하는 이 상의 수상리스트에 한국인 건축가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아래의 글은 2년 전 쯤 서울대 서현 교수께서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인데, 왜 한국에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랜드마크를 주문하는 공공기관은 많다. 그러나 그들의 공사예산은 프리츠커상 받는 국가의 절반을 넘지 않고 책정하는 건축설계비는 그 공사비 대비 다시 절반이다. 창의력에 투자하는 금액이 1/4 이하다. 서울과 도쿄의 물가 수준은 거의 1:1이므로 건축가의 생존대안은 설계기간을 1/4이하로 줄이는 것이다. 훈련기간은 1/4이 안되지만 금메달은 따와라.”³
한국 사회의 지식산업에 대한 인식은 발주자가 적절한 생산 기간이나 비용을 인정해주지 않고 개인이 알아서 절로 크고 만들어가야 하는 산업군이며,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고, 알아서 적당히 베껴도 좋은... 그런 정도입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 인식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 사업 발주를 하는 시스템인 나라장터의 발주 공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정부와 공공기관이 디자인 발주의 참여기업 자격요건을 공사업 면허를 가진 회사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건축사 면허를 가진 기업으로 공고하는 등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나라장터라는 시스템 안에서 지식산업 특히 디자인업을 하찮게 만드는 일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기도 합니다.⁴
다른 학과들보다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비싼 디자인 관련 학과를 만들고 정원을 늘려서 디자이너를 엄청나게 배출(2020년 기준 한국 2만 1천명, 영국 1만 9천명⁵)한 한국의 대학들은 정작 자신들의 학생들이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철학이나 인문학, 문화, 디자인 경영 등 사회를 읽고 끌어가는 힘을 키우는 과목들에 대한 교육은 외면한 채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는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법의 비중을 높여서 교육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졸업한 학생들은 디자이너라는 이름의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되고, 디자이너는 프로그램만 다루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진입장벽이 낮은 산업군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나 학원을 통해 사회에 나온 많은 디자인 전공자 또는 수료자들은 디자인을 대놓고 카피하는 시스템 안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인 비전문가인 발주처 담당자의 디자인 프로그램 오퍼레이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은 디자인 기업이 경험한 아래의 사례는 대기업이 어떻게 디자인 기업을 오퍼레이터화 하는가를 정확히 묘사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