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전날 밤 블로그에 올린 임장 기록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전세 7억’. 이 4글자가 아직도 현실감 없이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샤워를 하면서도, 머리를 말리면서도, 그 아파트 놀이터와 벤치에 앉아있던 할머니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살기 좋다는 말, 집값이 오른다는 말. 그 말들이 마치 주문처럼 귀에 맴돌았다.
두 번째 모임은 이상하게도 첫 모임일 때보다 훨씬 긴장됐다. 첫 모임일 때에는 ‘처음이라서’라는 핑계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니었다. 다들 안면이 트여서 그런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어쩐지 나는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시가 되자마자 문을 열고 저자가 들어왔다. 저자는 웃으면서 인사를 한 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임장은 다녀왔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자기소개 시간이 제일 싫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이런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얼어붙는 느낌이 든다. 누가 먼저 할까 눈치를 보는데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먼저 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52살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장모님 생신 때문에 용림시에 있는 처갓댁을 갔는데 간 김에 용림에서 제일 비싸다는 아파트에 임장을 다녀왔습니다.”
저자는 ‘용림시’라는 말을 듣자마자 반색을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용림시요? 좋은 동네죠! 어떠셨어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나 비싼가 이해가 잘 안 갔는데, 아파트 단지 앞으로 탄천도 있고 주변에 산도 있어서 산책하기 참 좋았습니다. 대장주 아파트라 그런가 마트나 상권도 괜찮았구요. 차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장을 보는데 문제 없겠다.. 싶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저자가 박수를 쳤다. “잘 보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 아파트가 관리가 잘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그럼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으셨나요?” “지하철이 멀어요.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교통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단점도 잘 파악하셨네요! 대장주 아파트라면 보통 당연히 교통 편의성이 좋을 거라 기대하는데 그 아파트는 지하철이 조금 멀다는 게 아쉽긴 하죠. 처음인데도 좋은 공부하셨군요.”
저자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또 이야기하실 분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이번엔 40대 여성이 손을 들었다.
“저는 박미경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45살이고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주말에 결혼식이 있어서 중일역에 갔다가 지하철에서 가까운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가봤습니다.”
“중일역이면 제가 이전에 살았던 곳이네요. 어떠셨어요?”
“확실히 아파트가 크고 역세권이어서 좋았어요. 교통도 편리하고 학원가도 잘 형성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학원가 반대편에 있는 상권은 좀 죽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 상권까지 보시다니 성장이 빠르시네요. 다른 분들은요?”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빠르게 순서가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상도역에 갔는데 언덕이 생각보다 심해서 실제 체감은 역세권이 아닌 것 같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남현역 이스트트리플크라운아파트가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아이 있는 집보다 노부부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았다‘고 했다. 다들 자신만의 숫자와 기준이 들어있어서 첫 모임 때보다 분위기가 훨씬 실전 같았다.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최대한 긴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짧게 말했다. “마덕 레이크사이드아파트를 가봤는데 유동인구도 많고 상권도 좋았고 거주민들도 만족도가 높아보였습니다.”
저자가 물었다. “그래서, 살고 싶었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아요.”
저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관찰이에요. 계속하시면 분명 더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