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물건 번호가 불렸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집행관이 입찰표를 한 장씩 확인하며 금액을 읽었다.
“입찰자 세 명입니다.”
“2억 3,800만 원.”
“2억 4,100만 원.”
숫자가 법정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앞을 바라봤다.
마지막 입찰 금액까지 확인한 집행관이 가장 높은 금액을 다시 한번 읽었다.
“최고가 매수 신고인, 박지원 씨.”
망치 소리나 박수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름이 불린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갔을 뿐이었다. 엄청나게 기뻐할 줄 알았는데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크게 웃거나 환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니 눈빛 한쪽에 작게 번지는 안도감과 묘한 기쁨이 보였다.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합격 통지를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저 사람은 지금 무엇을 산 걸까. 부동산 한 채를 산 걸까.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몇 년의 시간을 산 걸까.
다음 물건의 개찰이 이어졌다.
어떤 물건은 입찰자가 한 명뿐이었고, 어떤 물건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금액이 조금씩 달라질 때마다 공기의 밀도도 미묘하게 변했다. 소란스럽지 않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사람들의 계산이 치열하게 오가고 있음이 피부로 와닿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도 나도 모르게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지막 물건까지 개찰이 끝나자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누군가는 빠른 걸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방을 메고 나갔다. 아까 앞으로 나갔던 그 사람은 건물 밖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됐어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 담긴 기쁨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괜히 오랫동안 바라봤다.
법원 계단을 내려오면서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호기심이었다. 저 사람들이 저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얼마나 많은 계산을 했을까? 나도 그 과정을 알고 싶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휴대전화로 ‘부동산 경매 기초 책’을 검색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중에 알아보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날은 미루고 싶지 않았다.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경매 관련 책을 몇 권 빌렸다. 고시원 침대 위에 책을 펼치자 권리분석, 유찰, 말소기준권리, 대항력처럼 처음 보는 단어들이 빼곡하게 등장했다. 한 문장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같은 부분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그래도 법원에서 봤던 사람들이 떠오르자 책을 덮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법원에서 이름이 불린 사람이 정확히는 ‘낙찰자’가 아니라 "최고가 매수 신고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최고가매수신고인으로 정해졌다고 곧바로 부동산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법원이 매각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매각허가결정이 확정된 뒤 정해진 기한 안에 매각대금을 납부해야 매수 절차가 진행됐다. 그제야 법원 밖에서 “됐어요”라고 말하던 사람의 표정이 조금 이해됐다. 아직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준비 끝에 첫 번째 문을 통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처음 경매법정을 다녀온 뒤부터 내 생활은 조금씩 달라졌다. 출퇴근길에는 경제 기사를 읽었고, 점심시간에는 경매 관련 카페의 글을 하나씩 찾아봤다. 성공 후기보다 실패담을 더 많이 읽었다. 권리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사람, 수리비를 지나치게 적게 계산한 사람, 주변 시세만 보고 입찰했다가 예상보다 수익이 줄어든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 계산이 틀렸는지, 어떤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임장에서 무엇을 놓쳤는지가 솔직하게 적혀 있었다. 잘됐다는 이야기보다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 배울 것이 더 많았다.
며칠 뒤에는 법원경매정보 사이트에서 물건을 검색해 봤다. 사건번호 옆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붙어 있었다. 물건의 점유관계와 조사 내용이 담긴 현황조사서, 감정평가 내용, 매각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각물건명세서가 있었다. 처음에는 서류를 열어도 어디를 봐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조금씩 질문이 생겼다.
‘지금 이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감정평가를 받은 뒤 주변 시세가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집 안을 직접 보지 못한다면 수리비는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모르는 것이 많아질수록 이상하게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스터디 사람들과 경매 물건을 직접 보러 가면 어떨까?’
지난번 함께 법원에 갔던 사람들도 단체 대화방과 카페에서 전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면 내가 놓친 부분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에 나온 수현동 경매 물건, 같이 임장 가실 분 계실까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고, 내가 궁금해서 만드는 자리였다. 아무도 답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몇 분이 지나자 세 명이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그중 한 명은 법원에서 내게 물건 번호를 조용히 짚어줬던,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였다. 함께 갈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