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동 임장을 다녀온 이후 단톡방 분위기가 이전보다 훨씬 활발해졌다. 누군가는 새로운 물건을 공유했고, 누군가는 최근 낙찰 사례를 정리해서 올렸다. 질문 하나에 긴 토론이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많았지만, 읽다 보면 조금씩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금요일 퇴근길, 경제기사를 읽고 있는데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내일 민제동 물건 임장 가보실 분 계신가요?”
지난번 나에게 물건 번호를 짚어줬던 그 남자였다. 잠깐 고민하다가 참석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몇 분 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먼저 와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남자였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 번 다니다 보면 같은 동네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미 몇 번 입찰해봤고, 한 번은 아깝게 차순위에 머물렀다고 했다. “입찰표 낼 때는 엄청 떨리는데, 막상 내고 나면 조금 덤덤해져요.” 그 말을 듣자 처음 법원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낙찰을 받고도 담담하게 서 있던 사람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스터디 사람들과 여러 번 더 임장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냥 듣기만 했지만 두 번째 임장부터는 나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주차장 진입 동선이 좀 불편한 것 같아요.”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 것도 전세 놓을 때 영향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자신감이 막 솟는 것 같았다. 임장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서 임장 내용을 정리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남자와 대화할 시간이 늘어났다. 나보다 2살 연상이었는데 내 노트를 보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엔 다 어려워요. 근데 이렇게 계속 기록하면 어느 순간 감이 생기더라고요.” 나는 노트 한쪽에 그의 말을 적어두었다. ‘경매는 감이 아니라 반복이다.’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했던 대화는 어느 순간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서울에서 처음 살게 된 이야기, 고시원 생활, 각자 왜 경매를 시작했는지. 어떻게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등등… 알고 보니 그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어서 훨씬 친밀감이 느껴졌다.
한 달간 거의 매주 임장을 다녔다. 임장을 마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도 같이 임장을 했던 그가 물었다. “양순 씨 이번 경매 입찰해볼 생각 있어요?” “제가요? 음… 돈이 부족한데요.” 그는 웃었다. “그럼 보증금뿐 아니라 잔금까지 마련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봐요. 경매는 한 번 써보면 공부가 되긴 하거든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가 덧붙였다. “처음부터 낙찰될 수도 있으니까 자금 준비는 해둬야 해요.”

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정리하다가 문득 몇 주 전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단어들이 이제는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계어만 같았던 전세가율, 유찰, 낙찰 상한선과 같은 단어들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경매가 더 이상 먼 이야기 같지만은 않았다. 진짜 다음 경매에서는 입찰표를 써볼까? 그리고 괜히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주 경매 보러 가세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네. 이번에는 저도 입찰해볼 생각이에요.” 괜히 웃음이 났다. 어쩌면 다음 법원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며칠 뒤, 입찰보증금과 잔금 마련 계획을 확인하고 다시 법원에 갔다. 이번에는 처음 갔을 때처럼 낯설지 않았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어느 층으로 올라가야 하는지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입찰표를 앞에 두자 손도 조금 떨렸다. 나는 펜을 들고 한참 고민했다. 노트에 적어둔 낙찰 상한선보다 훨씬 낮지만 해당 물건의 최저매각가격 이상인 금액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낙찰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숫자를 적었다. 그리고 봉투에 넣었다. 입찰함에 봉투를 넣는 순간 괜히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종이 하나가 상자 안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중요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출처 아주경제, 집값·규제에 막힌 30대 경매로 눈 돌렸어요
입찰 마감 시간이 지나고 개찰이 시작됐다. “입찰자 5명.” 금액이 하나씩 불렸다. 내가 적은 금액도 그 사이에 있었다. 하지만 최고 입찰금액은 내가 적은 금액보다 최소 2배는 높은 금액이었다. “최고가매수신고인 이수지.”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역시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