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시작된 뒤로 나는 이상하게도 더 바빠졌다.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가는 대신 짧게라도 공사 중인 빌라에 들러 집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스터디 모임에 더 자주 나갔다. 집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경매 공부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인생이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어서 어떻게든 이 느낌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공사 현장에 갈 때마다 집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벽지가 뜯겨 나갔고 다음에는 바닥이 바뀌었고 어느 날은 주방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기분이 들떴다. 이 집이 정말 내 집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도 나는 계속 임장을 다녔다. 주말이면 스터디 사람들과 새로운 동네를 걸었고 평일 저녁에는 카페에 앉아 물건을 분석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자주 있었다. 많은 도움을 준 남자 스터디원과도 자연스럽게 더 자주 만나게 됐다. 같이 임장을 가고 물건을 분석하고 가끔 저녁을 같이 먹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했어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고 가장 많이 한 대화는 부동산 경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걱정마디자인에서 연락이 왔다.
“양순님,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어요. 마지막 감리 한 번 같이 보시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바로 시간을 냈다. 빌라에 도착했을 때 걱정마디자인 디자이너가 먼저 와 있었다. 집 안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벽지는 이미 마감이 끝났고 바닥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바로 집 안을 둘러보며 체크를 시작했다.
“여기 벽지 마감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어요.” 디자이너는 벽 모서리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지나쳤을 부분이었는데 역시 전문가는 바로 알아봤다. 욕실로 들어가더니 타일 사이의 줄눈을 손으로 천천히 짚어봤다.
“여기 줄눈 마감 조금 더 보강하면 좋겠어요.”
옆에 있던 시공사 직원이 메모를 했다. 주방에서도 체크가 이어졌다.
“싱크대 문짝 정렬 조금만 더 맞춰주세요.”
나는 처음이어서 다 좋아 보이기만 했는데 가만히 서서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디자이너는 마지막으로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현관 바닥과 문틀을 한 번 살펴보더니 갑자기 문턱을 손으로 짚어봤다. 그리고 말했다. “잠깐만요.” 나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왜요?” 디자이너는 문턱을 가볍게 눌러보며 말했다. “여기 문턱이 살짝 떠 있네요.” 나는 가까이 가서 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손으로 눌러보니 정말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시간 지나면 소리가 날 수도 있어요.” 디자이너가 설명했다. 그리고 시공사의 현장소장을 보며 말했다. “문턱 다시 한번 고정해 주세요. 실리콘 마감도 같이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체크리스트 작성 할 때 확인해야 해요.”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였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현관 문턱같은 작은 부분들이 집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디자이너는 집 안을 한 바퀴 더 돌며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잘 나왔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마감은 끝까지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