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지하철, 아니 지옥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간다. 내 고향 충청도 시골에서는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하면 다들 출세했다고들 한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순박한 부모님은 딸이 출세했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으신지 취직한 이후로 내내 나를 대견해하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효도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취업준비생으로 보내면서 그간 돌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만 해도 몇 백 개가 되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으니 친구들처럼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알아보던 차에 기적처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중소기업이지만 요즘 시대에 유망하다는 IT회사고, 무엇보다 강남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면접을 봤고, 합격통보를 받게 됐다. 정말 기뻤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때까지는.
본가가 지방이니 당연히 살 집을 구해야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월셋집이라도 얻어주겠다며 바쁜 농번기에도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회사가 강남역 주변이지만 강남역 근처에 있는 집을 바라지는 않았다. 강남 집값 비싼 거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냥 왕복 출퇴근 시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여도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스무 곳이 넘는 중개소 사무소를 다닌 뒤 겨우 찾아낸 곳은 왕복 출퇴근 거리가 3시간이 넘는 곳이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5만 원. 실평수 4평짜리 원룸형 오피스텔인데도 내 월급의 30%가 넘는 금액을 월세로 내야했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회사는 작지만 업무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인사팀에서 직원 추가 채용이 공고가 나가고 면접을 진행하던 중 팀장님이 병가로 자리를 비워 내가 대신 면접관으로 참석하게 된 날이었다. 50대 초반의 중견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경력직 지원자였다. 그는 면접 내내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시켜만 달라고 자식뻘인 나에게 비굴할 정도로 간청을 하고 돌아갔다. 면접이 끝난 후 나는 저 사람이 나의 미래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출퇴근시간에 생전 보지 않던 부동산과 경제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서 어느새 원룸 오피스텔 계약 만료 시기가 다가왔다. 집주인이 월세를 10만원을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이미 월급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내고 있던 나는 좀더 저렴한 월셋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번처럼 부동산을 왔다갔다 하며 고생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번에는 나 혼자서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명하다는 부동산 앱을 다운받아 몇날 며칠 밤늦게까지 보고 또 봤다. 일주일을 꼬박 찾아본 끝에 회사에서 1시간 거리인 곳에 1,000/45만원으로 살 수 있는 매물을 발견했다. 워낙 매물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회사 반차까지 내고 찾아갔으나… 사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욕실 타일도 군데군데 깨져있고 낮인데도 집이 우중충하고 어두웠다. 실망스러웠지만 계약 만료 시기도 코앞이고 매물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사를 한 날부터 왜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얼룩덜룩한 벽지와 바닥도 문제였지만 밤이 되자 대로변에서 들리는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가 새벽 내내 이어져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줄 만큼 심한 소음 때문에 도저히 여기서 살 수가 없어서 3일만에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집주인은 짐이 많다며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태도였는데 그래서였는지 선뜻 계약을 해지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월세의 절반만 돌려받은 채 급하게 19만원짜리 고시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충청도 시골 본가에 있는 내 방보다 훨씬 작은 방이었다. 몸을 겨우 누이고 나니 이러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